2022 '우리 다시 함께 기도해요' 안내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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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15회 작성일23-04-02 14:42본문
(6)에 이어서
여러분, 어설픈 일인지 모르겠지만, 각자가 주님 모신 기도 생활이 잘 되어있거든 제가 다음에 제시하는 것을 따르지 마세요. 그러나 내가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향해서 딱 자리 잡는! 주님의 보좌 앞에 자리 잡는! 기도 생활에 자리 잡는 이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어디서부터 출발할지 모르겠다고 생각된다면 제가 다음부터 하는 말씀을 참고로 생각해 주세요.
저는 10월부터 1월까지만 이 방법을 좀 적용해 보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신청하신 때부터(10월 중순쯤이 될지 여하튼 간에) 11월, 12월, 1월까지 석 달하고 좀 더 될 것입니다. 하다 보면 경우에 따라 좀 늦게 신청한 분은 한 석 달 될까요? 또 좀 일찍 신청한 분은 백일이 좀 넘을까요?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단단히 묶어진 마음으로!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집으로 나선 것은 적은 이야기 아닙니다.
만약에 창세기 21장에서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것을 대충했다면 22장에서 아들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는 것은 절대 안됩니다. 안된다고요! 마음이 그렇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단하게 되면 22장도 됩니다. 창세기 14장에서 날마다 주님 모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방법의 훈련을 철저하게 익혀간 사람은 엄청난 연합군과 싸우러 나가기가 어렵지 않아요. 넉넉합니다!
다윗이 빈들에서 주님 모시고 싸움할 수 있는 영혼이 되어 있고, 신실하게 은혜 속에 살고, 또 그 은혜 가운데 찬양하는 자세가 되어있다면 골리앗과 싸움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렇게 형성되어야 한다는 그 말씀입니다. 이것이 형성 안 되면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상 마지막 부분에 다윗의 길이 참 어려운 길로 주어진 것은 형성되라는 뜻입니다. 형틀을 만들어서 그 안에 시멘트를 붓고 얼마 지나면 딱딱하게 굳어지듯이 이런 자세가 형성되라는 그 말씀입니다.
저는 혼자 주님 앞에서 좀 더듬어 보았습니다.
우리가 많이 해도 넉 달이 안 됩니다. 어떤 분은 석 달, 어떤 분은 석 달이 안 될 수도 있고, 어떤 분은 한 백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이 형틀을 치울 것입니다. 이것을 없앨 거예요. 형성되었으면 이제 어디 가더라도 자유스럽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것을 형성시키는 의미에서 좀 철저하게 마음가짐을 가져보도록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되고 허락하심이 되면, 이 길을 참고로 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저희 교회 뒤에는 제법 넓은 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빈들판 학교”란 그런 큰 비석을 세워놓았습니다.
거기서 전에는 우리가 전국에서 온 많은 분이 모여서 집회를 했습니다. 주님은 불쌍히 여겨 주셨고 내려주시는 은혜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모일 수도 없고 또 모여서도 안 되겠지요. 코로나로 어려운 이 여건 속에서 어떻게 모일 수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단단한 플라스틱 의자 하나씩 자리 잡게 만들어 놓고자 합니다. 그 산은 장소가 제법 넓습니다. 거기에 여러분의 몸은 못 오지만 마음은 하루에 한 번씩, 여러분을 위한 기도 시간 말고 지금 우리가 정한 네 가지 기도가 있지 않아요. 그래서 그 동산에 올라와 주님 앞에 자리 잡은 마음으로 한 삼십 분간! 십 분은 너무 짧아요. 이십 분도 짧아요. 한 삼십 분만! 좀 넘는 것은 괜찮습니다. 의자에 자리 잡은 마음으로 내 주님을 향하여 참 어려움 있는 이 땅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구해 본다는 것, 얼마나 큰일인지요! 뜻깊은 일인지요!
지금 이때 꼭 맞는 일이지 않겠어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정함이 된다면 이렇게 신청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주소나 이름은 정확하게 쓰지 마세요.
대신에 이렇게 써 주세요. 그 의자에 이런 것을 붙여드리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이라면 봉담읍까지만 쓰시고 그 뒤의 주소는 쓰지 마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성함이 세 글자일 텐데 가운데 글자는 빼고 쓰세요.
그리고 그 뒤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한 해를 써 보세요. 지금부터 예수님을 믿은 지 삼 년밖에 안 되었으면 세 살짜리로 쓰면 됩니다. 삼 년. 그래도 십몇 년이 되면 십몇 년이라고. 육신의 나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나이, 해. 그 연도는 몰라도 대충해서 더듬어 가면 여러분 비슷하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맨 뒤에는 여러분이 갖고 싶은 들꽃 이름 하나를 써 보세요. 들꽃 이름 하나!
그렇게 써 놓으면 분명히 여러분이 다른 분들과 혼란스럽지 않고 여러분이 드러나지 않아요. 그것을 여러분의 의자에 붙여드릴까 생각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돼서 생각해 보면 마음에 참 기쁨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복잡한 도시에 계시더라도 늘 마음이 이런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기도한다면 참 좋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
삼 개월에서 한 사 개월 정도. 하루에 삼십 분 동안!
정말 이때, 절실한 마음으로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여러분의 영혼도 주님 앞에 자리 잡는, 보좌 앞에 자리 잡는 참 축복된 여러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에게 큰 평안 있기를 바라고요. 이번 일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큰 축복이 되고,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셔서 우리의 삶 속에 관여하시고 인도하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는 은총이 정말 많기를 구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 다시 함께 기도해요!”라는 이 주제로 우리가 만나는(아니 얼굴은 뵙지 못하지만), 주님의 보좌 앞에서 각자가 조용하게 기도하는 자세로 우리가 인터넷을 통하여 함께 만나는 시간은 1월 12일(수)부터 15일(토)까지 짧은 나흘 밤입니다.
그것도 밤 7시부터 9시까지의 제한된 짤막한 시간입니다.
여러분, 어설픈 일인지 모르겠지만, 각자가 주님 모신 기도 생활이 잘 되어있거든 제가 다음에 제시하는 것을 따르지 마세요. 그러나 내가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향해서 딱 자리 잡는! 주님의 보좌 앞에 자리 잡는! 기도 생활에 자리 잡는 이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어디서부터 출발할지 모르겠다고 생각된다면 제가 다음부터 하는 말씀을 참고로 생각해 주세요.
저는 10월부터 1월까지만 이 방법을 좀 적용해 보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신청하신 때부터(10월 중순쯤이 될지 여하튼 간에) 11월, 12월, 1월까지 석 달하고 좀 더 될 것입니다. 하다 보면 경우에 따라 좀 늦게 신청한 분은 한 석 달 될까요? 또 좀 일찍 신청한 분은 백일이 좀 넘을까요?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단단히 묶어진 마음으로!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집으로 나선 것은 적은 이야기 아닙니다.
만약에 창세기 21장에서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것을 대충했다면 22장에서 아들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는 것은 절대 안됩니다. 안된다고요! 마음이 그렇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단하게 되면 22장도 됩니다. 창세기 14장에서 날마다 주님 모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방법의 훈련을 철저하게 익혀간 사람은 엄청난 연합군과 싸우러 나가기가 어렵지 않아요. 넉넉합니다!
다윗이 빈들에서 주님 모시고 싸움할 수 있는 영혼이 되어 있고, 신실하게 은혜 속에 살고, 또 그 은혜 가운데 찬양하는 자세가 되어있다면 골리앗과 싸움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렇게 형성되어야 한다는 그 말씀입니다. 이것이 형성 안 되면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상 마지막 부분에 다윗의 길이 참 어려운 길로 주어진 것은 형성되라는 뜻입니다. 형틀을 만들어서 그 안에 시멘트를 붓고 얼마 지나면 딱딱하게 굳어지듯이 이런 자세가 형성되라는 그 말씀입니다.
저는 혼자 주님 앞에서 좀 더듬어 보았습니다.
우리가 많이 해도 넉 달이 안 됩니다. 어떤 분은 석 달, 어떤 분은 석 달이 안 될 수도 있고, 어떤 분은 한 백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이 형틀을 치울 것입니다. 이것을 없앨 거예요. 형성되었으면 이제 어디 가더라도 자유스럽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것을 형성시키는 의미에서 좀 철저하게 마음가짐을 가져보도록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되고 허락하심이 되면, 이 길을 참고로 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저희 교회 뒤에는 제법 넓은 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빈들판 학교”란 그런 큰 비석을 세워놓았습니다.
거기서 전에는 우리가 전국에서 온 많은 분이 모여서 집회를 했습니다. 주님은 불쌍히 여겨 주셨고 내려주시는 은혜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모일 수도 없고 또 모여서도 안 되겠지요. 코로나로 어려운 이 여건 속에서 어떻게 모일 수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단단한 플라스틱 의자 하나씩 자리 잡게 만들어 놓고자 합니다. 그 산은 장소가 제법 넓습니다. 거기에 여러분의 몸은 못 오지만 마음은 하루에 한 번씩, 여러분을 위한 기도 시간 말고 지금 우리가 정한 네 가지 기도가 있지 않아요. 그래서 그 동산에 올라와 주님 앞에 자리 잡은 마음으로 한 삼십 분간! 십 분은 너무 짧아요. 이십 분도 짧아요. 한 삼십 분만! 좀 넘는 것은 괜찮습니다. 의자에 자리 잡은 마음으로 내 주님을 향하여 참 어려움 있는 이 땅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구해 본다는 것, 얼마나 큰일인지요! 뜻깊은 일인지요!
지금 이때 꼭 맞는 일이지 않겠어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정함이 된다면 이렇게 신청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주소나 이름은 정확하게 쓰지 마세요.
대신에 이렇게 써 주세요. 그 의자에 이런 것을 붙여드리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이라면 봉담읍까지만 쓰시고 그 뒤의 주소는 쓰지 마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성함이 세 글자일 텐데 가운데 글자는 빼고 쓰세요.
그리고 그 뒤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한 해를 써 보세요. 지금부터 예수님을 믿은 지 삼 년밖에 안 되었으면 세 살짜리로 쓰면 됩니다. 삼 년. 그래도 십몇 년이 되면 십몇 년이라고. 육신의 나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나이, 해. 그 연도는 몰라도 대충해서 더듬어 가면 여러분 비슷하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맨 뒤에는 여러분이 갖고 싶은 들꽃 이름 하나를 써 보세요. 들꽃 이름 하나!
그렇게 써 놓으면 분명히 여러분이 다른 분들과 혼란스럽지 않고 여러분이 드러나지 않아요. 그것을 여러분의 의자에 붙여드릴까 생각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돼서 생각해 보면 마음에 참 기쁨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복잡한 도시에 계시더라도 늘 마음이 이런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기도한다면 참 좋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
삼 개월에서 한 사 개월 정도. 하루에 삼십 분 동안!
정말 이때, 절실한 마음으로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여러분의 영혼도 주님 앞에 자리 잡는, 보좌 앞에 자리 잡는 참 축복된 여러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에게 큰 평안 있기를 바라고요. 이번 일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큰 축복이 되고,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셔서 우리의 삶 속에 관여하시고 인도하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는 은총이 정말 많기를 구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 다시 함께 기도해요!”라는 이 주제로 우리가 만나는(아니 얼굴은 뵙지 못하지만), 주님의 보좌 앞에서 각자가 조용하게 기도하는 자세로 우리가 인터넷을 통하여 함께 만나는 시간은 1월 12일(수)부터 15일(토)까지 짧은 나흘 밤입니다.
그것도 밤 7시부터 9시까지의 제한된 짤막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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